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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주의적 관점으로 본 한중일 3국의 경제 협력: 미국 관세에 맞선 실용적 공조

Archiver for Everything 2025. 4. 3.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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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갈등과 정치적 긴장 관계에도 불구하고 한국, 중국, 일본이 미국의 관세 정책에 대응하여 경제적 협력을 모색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는 동아시아의 국제 관계가 이념이나 역사보다 경제적 실리를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국제 정치 현실주의 관점에서 이러한 변화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본다.

국가 이익 중심의 실용적 접근

지난 3월 30일 서울에서 5년 만에 재개된 제13차 한·중·일 경제통상장관회의는 세 나라가 처한 경제적 현실을 반영한다. 트럼프 2기 정부의 보호무역 정책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동아시아 3국은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실용적 협력을 선택했다. 이는 국가가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한다는 국제정치 현실주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사례다.

세 나라의 협력 논의는 역사적, 정치적 갈등을 뒤로하고 공동의 경제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한일 간 위안부 및 강제징용 문제, 중일 간 센카쿠(댜오위다오) 분쟁, 한중 간 사드(THAAD) 배치 갈등 등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생존과 번영이라는 더 큰 국가 이익을 위해 협력의 물꼬를 틀 수 있었다.

세력 균형의 새로운 모색

미국의 관세 정책에 맞선 한중일 3국의 협력은 단순한 경제적 대응을 넘어 동아시아 지역에서 새로운 세력 균형을 모색하는 시도로 볼 수 있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에서는 강대국의 압력에 맞서 중소국가들이 연합하여 균형을 추구하는 '균형(balancing)' 전략을 설명한다. 한중일 3국의 협력은 미국 주도의 경제 질서에 대한 일종의 균형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반도체 공급망 협력이다. 일본과 한국이 중국에서 반도체 원자재를 수입하고, 중국이 한국과 일본에서 반도체 칩을 구매하는 방식의 상호 의존성 강화는 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와 관세 압박에 대한 대안적 공급망 구축이다. 이는 세 나라가 각자의 강점을 활용한 실용적 접근법으로, 국가 간 협력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경제적 상호의존의 전략적 활용

한중일 3국의 협력은 경제적 상호의존성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사례다. 세 나라는 이미 깊은 경제적 상호의존 관계에 있으며, 이번 회의에서 논의된 자유무역협정(FTA) 재개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기반의 협력 강화는 이러한 상호의존성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경제적 상호의존은 양날의 검이다. 한편으로는 국가 간 협력을 촉진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취약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관세 정책이라는 공동의 위협 앞에서 세 나라는 상호의존의 이점이 잠재적 위험보다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국가들이 종종 '상대적 이득'보다 '절대적 이득'을 위해 협력한다는 신현실주의 이론의 주장과 일치한다.

지정학적 현실과 협력의 한계

물론 한중일 3국의 경제 협력이 모든 갈등을 해소하고 완전한 동맹 관계를 형성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세 나라 사이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역사적, 영토적 분쟁이 존재하며, 각국의 안보 이익과 동맹 관계도 상이하다. 특히 한국과 일본은 미국과의 안보 동맹을 중시하는 반면, 중국은 미국과 전략적 경쟁 관계에 있다.

이러한 지정학적 현실은 3국 협력의 범위와 깊이에 제한을 가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협력에 대해 크게 우려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는 "동아시아 3개국은 관세로 더 나은 성과를 거둘 가능성이 있다"며, 협력이 미국의 전략적 위치를 크게 위협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향후 전망: 선택적 협력의 시대

한중일 3국의 경제 협력은 국제 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준다. 전통적인 동맹 관계나 이념적 연대가 아닌, 특정 이슈와 영역에서의 선택적 협력이 증가하고 있다. 이는 냉전 시대의 고정된 블록 체제에서 벗어나 더 유연하고 실용적인 국제 관계로 전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향후 한중일 협력의 성패는 세 나라가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긴장 사이에서 얼마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협력은 항상 자국의 이익에 부합할 때만 지속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는 환경에서, 세 나라가 공동으로 대응하는 것이 각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면 협력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

결론: 경제적 현실주의의 승리

한중일 3국의 미국 관세 정책에 대한 공동 대응은 국제 관계에서 이념이나 역사보다 경제적 실리가 우선시되는 '경제적 현실주의'의 승리를 보여준다. 세 나라는 복잡한 역사적 관계와 정치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공동의 경제적 위협에 맞서 협력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협력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 그리고 다른 영역으로 확대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경제적 실리를 중심으로 한 이번 협력은 동아시아 지역 협력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국가 간 관계가 단순한 우호-적대 구도를 넘어, 이슈별로 다양한 협력과 경쟁이 공존하는 복합적인 관계로 발전해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결국 한중일 3국의 경제 협력은 국가들이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가운데서도 상호 이익을 위한 협력을 모색할 수 있다는 현실주의적 협력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는 갈등과 협력이 공존하는 복잡한 국제 관계의 현실을 반영하는 사례로, 향후 동아시아 지역 질서 형성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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