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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개론 11. 19세기 철학 1 – 헤겔과 쇼펜하우어

Archiver for Everything 2025. 3. 20.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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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말 칸트로부터 시작된 독일 관념론은 피히테와 셸링을 거쳐, 헤겔의 방대한 체계 속에서 정점을 맞이한다. 그러나 19세기 철학은 단순히 관념론에 머무르지 않고, 쇼펜하우어처럼 염세적·비관적 세계관을 제시하는 흐름도 등장한다. 이번 11회차에서는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과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의 사상을 중심으로 19세기 철학의 다양성을 살펴본다.

1. 시대적 배경

(1) 프랑스 혁명과 근대 시민사회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유럽은 정치·사회 구조가 급변한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계몽주의 이상이 현실화되면서, 인간 이성과 역사 발전에 대한 낙관론이 힘을 얻는다. 프랑스 혁명은 단순한 정치적 사건을 넘어 인류 역사의 획기적 전환점으로 인식되었으며, 특히 헤겔은 이를 '세계정신이 말을 타고 달리는 순간'이라고 표현하며 역사적 필연성의 현현으로 해석한다.

봉건적 신분제도가 무너지고 시민계급이 부상하면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중심으로 하는 근대 시민사회의 기틀이 마련된다. 이러한 사회적 변동은 철학자들에게 역사의 진보와 인간 이성의 가능성에 대한 성찰을 촉발시킨다.

(2) 나폴레옹 전쟁과 독일 민족주의

나폴레옹이 유럽 대륙을 재편하고, 이 과정에서 독일 지역도 격동을 겪게 된다. 나폴레옹의 군대가 1806년 예나 전투에서 프로이센을 패배시켰을 때, 헤겔은 그 장면을 목격하며 깊은 인상을 받는다. 그는 나폴레옹을 '세계정신이 구현된 인물'로 보았으며,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그의 철학 체계에 반영된다.

한편, 나폴레옹의 침략은 독일 지식인들 사이에서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계기가 된다. 피히테는 독일 국민에게 고함을 통해 민족주의적 열정을 고취시켰으며, 독일의 문화적·정신적 통일을 강조한다. 이러한 민족주의적 분위기는 19세기 독일 철학의 중요한 배경이 된다.

(3) 19세기 정신사

산업혁명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변화, 민족국가 형성, 식민지 쟁탈전 등 19세기 유럽은 이전보다 훨씬 복합적인 양상을 띤다. 산업화는 도시화, 노동계급의 형성, 빈부격차 심화 등 새로운 사회문제를 야기했으며, 이는 후대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으로 이어진다.

또한 다윈의 진화론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기존 관념을 뒤흔들었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인간 정신의 비합리적 측면을 부각시켰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19세기 철학은 인간 정신과 역사의 본질, 사회와 개인의 관계, 이성과 비이성의 문제 등을 탐구하며 다양한 사상적 흐름을 형성한다.

2. 헤겔(Georg W.F. Hegel, 1770~1831)

(1) 절대정신(Absolute Spirit)의 철학

헤겔은 정신현상학(Phänomenologie des Geistes, 1807), 논리학(Die Logik, 1812-16), 법철학(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1821) 등에서 "궁극적 실재는 정신(Geist)이며, 역사는 이 절대정신이 자기 자신을 인식해 가는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헤겔에게 정신(Geist)은 단순한 주관적 의식이 아니라, 세계 전체를 포괄하는 궁극적 실재이다. 이 절대정신은 자연, 인간 의식, 사회 제도, 예술, 종교, 철학 등 모든 것을 관통하며,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전개하고 발전시켜 나간다. 헤겔은 이러한 정신의 발전 과정을 세 단계로 구분한다:

  1. 주관정신(Subjective Spirit): 개인 의식과 심리의 차원
  2. 객관정신(Objective Spirit): 사회, 법, 도덕, 국가 등 사회적 차원
  3. 절대정신(Absolute Spirit): 예술, 종교, 철학을 통한 최고 형태의 자기인식

이 세 단계는 점차 높은 수준의 자유와 자기인식을 향해 발전하며, 최종적으로 절대정신은 철학을 통해 자신의 본질을 완전히 인식하게 된다.

(2) 변증법(정-반-합)

헤겔의 철학은 '변증법(dialectic)'으로 유명하다. 그는 모든 사유와 존재가 정(正, thesis)·반(反, antithesis)·합(合, synthesis)의 과정을 통해 발전한다고 설명한다. '정'이 제시될 때 '반'이 그에 대립하거나 한계를 드러내고, 그 둘이 종합된 '합'이 새로운 단계로 상승한다는 구조이다.

변증법은 단순한 논리적 방법이 아니라, 실재 자체의 발전 원리이다. 모든 개념과 존재는 자신 안에 모순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 모순이 전개되고 해소되는 과정에서 더 높은 단계의 실재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존재(Being)'는 너무 추상적이고 공허하여 '무(Nothing)'와 다를 바 없게 되고, 이 둘의 통일은 '생성(Becoming)'이라는 더 구체적인 범주로 발전한다.

헤겔은 이러한 변증법적 과정이 논리학, 자연철학, 정신철학 등 모든 영역에서 작동한다고 보았으며, 이를 통해 세계의 모든 현상을 포괄하는 체계적 철학을 구축하고자 했다.

(3) 자유와 역사

헤겔에게 역사는 절대정신이 자유를 향해 전진하는 과정이다. 세계사 속에서 각 민족과 국가의 정신이 발전을 이룩하며, 최종적으로는 인간이 자기 본질인 자유를 완전히 실현할 수 있다고 본다.

헤겔의 *역사철학강의(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에서는 세계사를 동양(한 사람만 자유로운 단계), 그리스·로마(일부만 자유로운 단계), 게르만 세계(모든 사람이 자유로운 단계)의 발전 과정으로 설명한다. 이는 자유의 의식이 점차 확장되어가는 과정으로, 궁극적으로는 근대 국가에서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유기적 통일이 실현된다고 본다.

이러한 역사관은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라는 헤겔의 유명한 명제와 연결된다. 즉, 역사는 우연적 사건들의 연속이 아니라 이성의 필연적 전개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이성은 점차 자신을 현실화한다는 것이다.

(4) 의의

헤겔은 사상과 역사를 유기적·논리적으로 연결함으로써, 정치·경제·예술·종교 등이 '정신'의 자기 전개 과정에 포함된다고 설명한다. 이는 체계의 웅대함으로 당대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마르크스나 실존주의, 분석철학 등 후대 철학자들에게 수용 혹은 비판의 형태로 지속적인 영향을 끼친다.

헤겔의 변증법적 방법론은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과 변증법적 유물론에 영향을 주었으며, 그의 객관정신 이론은 법철학과 사회철학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 또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은 인정 투쟁(Kampf um Anerkennung)이라는 개념을 통해 현대 사회철학과 인정이론에 영향을 미친다.

헤겔의 방대한 체계는 비록 그 이후에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철학사에서 가장 야심찬 종합의 시도로 평가받으며, 오늘날까지도 다양한 해석과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3.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

(1) 의지(Wille)와 표상(Vorstellung)

쇼펜하우어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 1818)*에서 세계의 근본을 '의지(Wille)'로 규정한다. 여기서 의지는 목적 없는 맹목적 충동으로, 세상 모든 존재가 본능적으로 지니는 원동력이다. '표상(Vorstellung)'은 인간의 주관적 지각과 인식을 의미하며, 우리는 의지를 직접 보지 못하고 현상 세계로만 인식한다는 점에서 칸트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쇼펜하우어는 칸트의 '물자체(Ding an sich)'를 '의지'로 해석함으로써, 칸트가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둔 것에 구체적 내용을 부여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외부 세계를 '표상'으로 인식하지만, 자신의 신체를 통해 내면에서 작용하는 '의지'를 직접 경험할 수 있다. 이 의지는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 식물, 심지어 무기물까지 관통하는 우주적 원리이다.

중요한 점은 이 의지가 이성적이거나 목적을 지닌 것이 아니라, 단지 '살고자 하는 충동', '존재하고자 하는 맹목적 욕구'라는 것이다. 이는 헤겔의 목적론적 역사관이나 이성 중심적 세계관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2) 고통과 비관주의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의지는 끊임없이 갈망하고, 욕망을 채워도 다시 갈망이 생긴다. 인간은 이 끝없는 갈망 속에서 좌절과 허무를 느끼게 되므로, 삶 자체가 근본적으로 고통스럽다고 주장한다. 이런 염세적 태도는 당대 유럽의 낙관적 역사관과 대조를 이룬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인간의 삶은 세 가지 상태를 오간다:

  1. 욕망이 충족되지 않을 때의 고통
  2. 욕망이 충족되었을 때의 일시적 만족(곧 권태로 변함)
  3. 새로운 욕망이 생겨날 때까지의 권태

이처럼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인간 존재의 조건은 근본적으로 비극적이다. 그는 "인생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여정은 고통에서 시작해 죽음으로 끝난다"라고 말하며, 이러한 비관주의는 당시 낙관적이고 진보적인 시대정신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3) 예술과 윤리

그럼에도 쇼펜하우어는 예술(특히 음악)을 통해 의지의 구속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다고 본다. 예술을 감상할 때 우리는 사적 욕망에서 해방되어, 순수한 관조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다른 생명체와의 동정심(연민)을 통해 의지의 작용을 완화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쇼펜하우어는 예술의 형식들을 의지의 객관화 단계에 따라 위계적으로 배열한다. 건축은 가장 낮은 단계의 의지(중력, 경직성 등)를 표현하는 반면, 음악은 의지 자체를 직접 표현하는 가장 높은 예술 형식이다. 특히 음악은 개념이나 재현을 거치지 않고 의지의 본질을 직접 드러내기 때문에, 모든 예술 중 가장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윤리적 측면에서는 동정심(Mitleid)을 모든 도덕의 기초로 본다.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것처럼 느끼는 능력이야말로 이기적 의지를 극복하는 길이며, 이는 개별적 존재로서의 분리감을 넘어 모든 존재와의 근본적 일체감을 깨닫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욕망의 부정(금욕)을 통해 의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해탈의 길이며, 이 점에서 불교나 힌두교의 가르침과 유사성을 보인다.

(4) 의의

쇼펜하우어는 이후 니체, 바그너, 프로이트 등에게 영향을 주었고, 동양 사상(불교, 힌두교)에 대한 관심을 유럽 철학계에 확산시키는 데도 한몫한다. 그의 철학은 낙관주의가 만연하던 서구에 비관적·염세적 시각을 소개함으로써, 인간의 고통과 의지의 문제를 심층적으로 성찰하도록 한다.

니체는 초기에 쇼펜하우어에게 크게 영향받았으며, 특히 예술에 대한 형이상학적 관점을 발전시킨다. 바그너는 쇼펜하우어의 음악관에 깊이 공감하여 자신의 음악극 창작에 반영했으며, 프로이트의 무의식 개념도 쇼펜하우어의 비합리적 의지 개념과 연관성을 갖는다.

또한 쇼펜하우어는 20세기 실존주의 철학의 선구자로도 볼 수 있다. 그의 철학에서 드러나는 삶의 무의미성, 고통, 불안 등의 주제는 후대 실존주의자들에게 중요한 성찰의 대상이 된다.

4. 헤겔과 쇼펜하우어의 비교

(1) 역사관

헤겔은 절대정신이 역사 속에서 자유를 향해 발전한다고 본다. 세계사는 이성의 필연적 전개 과정이며, 각 시대와 민족은 이 과정에서 특정한 역할을 수행한다. 역사는 목적론적으로 진보하며, 궁극적으로는 자유의 완전한 실현을 향해 나아간다.

반면 쇼펜하우어에게 역사는 의지의 무의미한 반복일 뿐, 궁극적 진보나 목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역사는 같은 것의 영원한 반복이며, 다른 이름과 다른 옷을 입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는 인류의 진보와 이성의 승리에 대한 헤겔의 낙관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2) 세계관

헤겔이 세계를 '합리적으로 전개되는 정신'으로 파악했다면, 쇼펜하우어는 세계의 근저에 맹목적·비합리적 의지가 흐르고 있다고 본다. 헤겔에게 실재는 본질적으로 이성적이고 개념적인 반면, 쇼펜하우어에게 실재는 비합리적이고 맹목적인 의지이다.

헤겔은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고,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다"라고 선언하며 세계의 합리성을 신뢰한다. 반면 쇼펜하우어는 세계의 근본이 비합리적 의지이므로, 인간의 이성은 단지 의지에 봉사하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본다.

(3) 구원의 가능성

헤겔은 정신의 발전 과정을 통해 자아와 세계가 최종적으로 '자유'를 획득할 수 있다고 본다. 절대정신은 자기인식의 완성을 통해 자유를 실현하며, 이는 역사의 필연적 귀결이다.

반면 쇼펜하우어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 예술적 관조나 동정심에 의한 자기 부정이라고 주장한다. 해방은 역사의 진보가 아니라 의지 자체의 부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는 불교의 열반이나 힌두교의 해탈 개념과 유사하며, 개인적 차원의 구원을 지향한다.

(4) 의의

두 철학자는 칸트의 후예로서 독일 관념론 시기에 공존했으나, 극명하게 다른 관점을 보여 준다. 헤겔이 이성, 진보, 체계, 종합을 강조했다면, 쇼펜하우어는 비이성, 순환, 파편, 부정을 중시한다.

이처럼 19세기 철학은 낙관적 진보와 허무·비관이 공존하는 복합적 지적 지형을 형성한다. 이 둘의 대립은 단순한 철학적 논쟁을 넘어, 근대성 자체에 내재된 긴장과 모순을 드러낸다. 이후 니체, 키르케고르, 마르크스 등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 긴장을 해소하거나 심화시키며 현대 철학의 다양한 흐름을 형성해 나간다.

5. 요약 및 결론

19세기 초중반 독일 철학은 헤겔의 체계적 관념론과 쇼펜하우어의 비관적 의지철학이라는 두 극단 사이에서 전개된다. 헤겔은 이성의 자기전개와 역사의 필연적 진보를 믿었으며, 그의 철학은 19세기 중반까지 독일 학계를 지배한다. 반면 쇼펜하우어는 당대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으나, 세기 후반 니체를 비롯한 후대 철학자들에게 재발견되어 큰 영향을 미친다.

두 철학자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칸트의 초월철학을 계승하고 있다. 헤겔은 칸트가 설정한 현상과 물자체의 이원론을 극복하고자 했으며, 쇼펜하우어는 칸트의 물자체를 '의지'로 해석함으로써 새로운 형이상학을 전개한다.

이들의 대조적 철학은 19세기 유럽이 경험한 급격한 변화와 모순을 반영한다. 프랑스 혁명과 계몽주의의 낙관적 전망이 실현되는 듯했지만, 동시에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새로운 고통과 소외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헤겔의 낙관적 역사관과 쇼펜하우어의 비관적 세계관은 이러한 시대적 모순을 각자의 방식으로 철학적으로 승화시킨 결과라고 볼 수 있다.

19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헤겔의 영향력은 쇠퇴하고, 유물론, 실증주의, 생철학, 실존주의 등 다양한 철학적 흐름이 등장한다. 그러나 헤겔과 쇼펜하우어가 제기한 문제—이성과 비이성, 역사와 자연, 진보와 순환, 체계와 단편—는 오늘날까지도 철학적 사유의 중요한 축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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