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 합리론(Continental Rationalism)이 이성을 지식의 근본 원천으로 삼았다면, 영국에서는 이에 대립되는 '경험주의(Empiricism)'가 태동한다. 경험주의자들은 인간이 지식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감각적 경험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존 로크(John Locke), 조지 버클리(George Berkeley), 데이비드 흄(David Hume)은 경험주의의 대표적 사상가들로 꼽히며, 이들은 근대 철학사의 또 다른 큰 축을 형성한다.
1. 배경과 주요 문제의식
(1) 영국 사회·문화적 배경
영국은 17~18세기에 걸쳐 근본적인 정치적·종교적 변화를 겪는다. 1642년부터 1651년까지 이어진 내전과 1688년 명예혁명은 영국 사회의 정치적 지형을 변화시켰으며, 절대왕정에서 입헌군주제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시민의 권리와 자유에 대한 담론이 활발해진다. 특히 왕권신수설과 같은 전통적 권위에 대한 도전과 함께 개인의 자율성과 합리적 사고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이 시기는 또한 자연과학이 급속도로 발전하던 시기로,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귀납적 방법론과 뉴턴(Isaac Newton)의 실험물리학의 성공은 관찰과 경험에 기초한 지식 체계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환경에서 경험주의 철학자들은 인간의 지식과 인식의 근원을 감각·경험에서 찾고자 한다.
(2) 합리론과의 대립
대륙 합리론이 '선천적 이념(idea innée)'이나 이성적 직관을 중시한다면, 영국 경험주의는 "아무리 이성이라 해도, 그 재료(material) 자체는 결국 경험을 통해 얻게 된다"고 반박한다. 데카르트가 주장한 '선천적 관념'이나 합리론자들이 강조한 '이성의 직관적 능력'은 경험주의자들에게 의심의 대상이 된다.
이들은 철학적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하고, 구체적인 사례와 논리를 제시한다. 특히 '마음의 작동방식'(심리학적 접근)을 통해 지식의 기원과 한계를 탐구하는 영국 경험주의의 방법론은, 현대 인지과학과 심리학 발전의 선구자적 역할을 한다. 합리론이 논리적·연역적 방법을 선호했다면, 경험주의는 관찰과 귀납적 추론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한다.
2.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
(1) 백지설(Tabula rasa)
로크는 *인간 지성론(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1689)*에서 "인간의 마음은 태어날 때 백지(tabula rasa) 상태이며, 모든 지식은 경험을 통해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이는 데카르트와 합리론자들이 주장하는 선천적 관념(innate ideas)의 존재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로크에 따르면, 우리의 마음은 처음에는 비어 있고, 감각 경험과 반성을 통해 점차 채워진다.
로크가 말하는 경험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감각(sensation)으로, 외부 세계의 대상이 감각 기관을 통해 마음에 전달되는 과정이다. 둘째는 반성(reflection)으로, 마음이 자신의 내적 작용(생각, 의심, 믿음, 추론 등)을 관찰하고 인식하는 과정이다. 이 두 경로를 통해 인간은 모든 관념(ideas)을 형성하며, 가장 복잡한 사고와 추상적 개념도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단순 관념들의 조합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2) 일차·이차 성질 구분
로크는 사물이 지닌 성질을 일차 성질(primary qualities)과 이차 성질(secondary qualities)로 나눈다. 일차 성질은 사물 자체에 내재해 있고, 연장(크기)·형태·운동·수·고체성 등 객관적·물리적 속성을 의미한다. 이러한 성질들은 사물에서 분리될 수 없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사물에 본질적으로 존재한다고 본다.
반면, 이차 성질은 우리의 감각 기관에서만 발생하는 색·소리·냄새·맛·촉감 등 주관적이며 개별적인 느낌에 해당한다. 로크는 이차 성질이 사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일차 성질이 우리 감각에 작용하여 생겨나는 '효과'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사과의 빨간색은 사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과 표면의 분자 구조(일차 성질)가 빛을 특정 방식으로 반사하고 이것이 우리 눈에 작용하여 '빨강'이라는 감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러한 구분은 갈릴레오와 데카르트에서도 발견되지만, 로크는 이를 더욱 체계화하여 사물과 인식의 관계를 설명하는 중요한 철학적 개념으로 발전시킨다. 이 구분은 후에 버클리와 흄에 의해 비판받게 되지만, 과학적 실재론과 현상적 경험의 관계를 설명하는 기본 틀로 오랫동안 영향을 미친다.
(3) 정치철학적 영향
로크는 사회계약론과 자연권 사상을 전개하여, 근대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기틀을 마련한다. *시민정부론(Two Treatises of Government, 1689)*에서는 자연권(생명·자유·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존재하며, 국민이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주장을 편다. 특히 로크는 홉스와 달리 자연 상태를 완전한 전쟁 상태가 아닌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상태로 묘사하며, 정부의 권력은 시민의 동의에 기초해야 하고 제한적이어야 함을 강조한다.
로크의 "정부의 목적은 시민의 자연권 보호"라는 사상은 미국 독립선언서와 프랑스 인권선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권력 분립, 법치주의, 관용의 원칙 등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들의 철학적 기반을 제공한다. 또한 그의 '소유권'에 관한 논의는 자본주의 경제 이론의 발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로크에 따르면, 개인이 자신의 노동을 자연물에 결합시킬 때 그 대상에 대한 소유권이 발생하며, 이는 근대 자유시장 경제의 이론적 기초가 된다.
3. 조지 버클리(George Berkeley, 1685~1753)
(1) 존재는 지각되는 것(Esse est percipi)
버클리는 시각론(An Essay Towards a New Theory of Vision, 1709), 인간 지식의 원리론(A Treatise Concerning the Principles of Human Knowledge, 1710) 등을 통해 급진적 경험주의를 펼친다. 그는 로크의 경험주의를 한층 더 밀고 나가 "존재한다는 것은 지각되거나 지각하는 것이다(Esse est percipi aut percipere)"라는 명제를 제시한다.
이 명제는 존재와 인식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주장을 담고 있다. 버클리에 따르면,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으며, 모든 존재는 반드시 정신에 의해 지각되거나(물리적 대상의 경우) 지각하는 주체(정신 자체)여야 한다. 이는 로크가 인정했던 "우리 인식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물질적 실체"의 개념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2) 물질 세계에 대한 회의
버클리는 감각 경험을 떠나 존재하는 '물질'이라는 것은 단지 관념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보고, 만지고, 듣는 모든 것은 실제로는 우리 정신 안의 관념(ideas)일 뿐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과를 볼 때, 실제로 보는 것은 '빨강', '둥금', '단단함' 등의 감각적 성질들의 집합이지, 이러한 성질들을 '지지하는' 별도의 물질적 기체(substratum)가 아니라는 것이다.
버클리는 이러한 주장을 통해 로크의 일차·이차 성질 구분도 비판한다. 로크가 일차 성질은 객관적으로 사물에 존재한다고 주장했던 반면, 버클리는 모든 성질(일차 성질 포함)이 결국 정신에 의해 지각되는 한에서만 존재한다고 본다. '크기'나 '형태' 같은 일차 성질도 결국 우리의 시각이나 촉각을 통해서만 알 수 있으며, 따라서 정신과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각하지 않을 때도 사물이 계속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버클리는 이에 대해 신(神)의 지각 작용을 통해 세계가 유지된다고 역설한다. 즉, 어떤 인간도 지각하지 않을 때도 신이 모든 것을 계속해서 지각하기 때문에 세계가 안정적으로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신학적 해결책은 버클리 철학의 중요한 특징으로, 그가 경험주의의 논리를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면서도 회의주의로 빠지지 않을 수 있게 해준다.
(3) 인식론적 의의
버클리의 주장은 일상적 상식을 뒤엎는 것으로 보이지만, 경험주의 논리를 극단까지 밀어붙인 사례로 자주 거론된다. 그의 관념론(Idealism)은 "우리는 관념(ideas)만을 직접 알 수 있으며, 그 너머의 물질은 불필요한 가정"이라는 원칙에 충실한 것이다. 이는 오컴의 면도날(불필요한 존재를 가정하지 말라는 원칙)을 철저히 적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후대 사상가들은 그를 유아론적(solipsism) 관념론 또는 주관적 관념론의 선구자로 평가하기도 한다. 특히 칸트의 관념론과 현상론 발전에 간접적 영향을 주었으며, 20세기 현상학과 언어철학에서도 버클리의 문제의식이 새롭게 조명된다. 또한 그의 '지각 이론'은 현대 인지과학의 선구적 업적으로도 평가받는데, 특히 시각 인식에 관한 그의 연구는 깊이 지각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비록 버클리의 물질 부정은 당시에 많은 비판과 풍자의 대상이 되었지만(사무엘 존슨이 돌을 걷어차며 "내가 이렇게 반박한다!"라고 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그의 철저한 현상주의적 접근은 인식과 존재의 관계에 대한 깊은 철학적 통찰을 제공한다.
4.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
(1) 귀납과 인과론 비판
흄은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A Treatise of Human Nature, 1739~1740), 인간 이해력에 관한 탐구(An Enquir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1748), 자연 종교에 관한 대화(Dialogues concerning Natural Religion, 1779) 등에서 경험주의를 한층 더 근본적으로 밀고 나간다.
그의 가장 혁신적인 기여 중 하나는 인과 관계(causation)에 대한 철저한 비판이다. 흄은 '원인과 결과(cause and effect)' 관계가 논리적 필연성이나 객관적 연결이 아니라, 단지 우리가 습관(Habit)과 심리적 연상(Association of ideas)을 통해 형성한 주관적 기대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A 사건 이후 B 사건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것을 관찰할 때, 두 사건 사이에 '필연적 연결'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지만, 실제로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두 사건의 '계속적 연접(constant conjunction)'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과성 비판은 자연과학의 기초를 흔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흄은 과학적 방법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인과관계를 자연에 대한 불변의 형이상학적 진리로 보는 대신, 인간 본성에 뿌리를 둔 심리적·실용적 원리로 재해석함으로써 과학을 보다 견고한 경험적 기반 위에 재정립하고자 한다.
(2) 인상(Impression)과 관념(Idea)
흄은 마음의 내용을 '인상(impressions)'과 '관념(ideas)'으로 구분한다. 인상은 직접적이고 강렬한 감각적·정서적 경험으로, 우리가 실제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포함한다. 반면 관념은 인상의 '희미한 복사본'으로, 기억이나 상상 속에서 재생된 이미지를 의미한다.
흄에 따르면, 모든 관념은 궁극적으로 선행하는 인상에서 비롯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은 관념은 무의미하거나 혼동된 것으로 간주된다. 이는 철학적 개념의 명료화를 위한 중요한 기준이 되는데, 흄은 이를 통해 많은 형이상학적 개념들(예: 실체, 자아, 신)이 검증 가능한 인상을 찾을 수 없다는 이유로 비판한다.
또한 흄은 관념들이 연결되는 방식에 대해 세 가지 원리를 제시한다: 유사성(resemblance), 인접성(contiguity), 그리고 원인-결과(cause and effect). 이 세 가지 연상 원리를 통해 우리의 모든 복잡한 사고와 추론이 형성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분석은 후대 심리학과 인지과학의 발전에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3) 회의주의(Skepticism)의 심화
흄은 신, 영혼, 자아의 실체 등을 경험적 관찰로 확인할 수 없으므로, 그러한 개념은 구체적인 근거가 희박하다고 본다. 특히 그는 '자아(self)'에 대한 지속적이고 단일한 인상을 찾을 수 없다고 지적하며, 우리가 단일한 자아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상 "다양한 지각들의 다발(bundle of different perceptions)"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흄의 회의주의는 전통적인 형이상학과 자연신학에 심각한 도전이 된다. 그는 기적에 대한 증언의 신뢰성을 문제 삼고, 신의 존재 증명을 위한 전통적 논증들(우주론적, 목적론적 논증 등)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특히 자연 종교에 관한 대화에서는 신의 선하심과 세상의 악을 조화시키는 문제(신정론)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준다.
그러나 흄의 회의주의는 파괴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는 철저한 회의를 통해 인간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되, 실천적 영역에서는 자연적 믿음과 관습의 역할을 인정한다. 이는 "우리는 모든 것을 의심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산다면 생존할 수 없다"는 실용적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4) 칸트와 계몽주의에 미친 영향
흄은 "나를 독단의 잠에서 깨운 사람"이라는 칸트의 평가를 받았을 정도로, 이후 독일 관념론 및 근대 인식론 전반에 막대한 파급을 준다. 칸트는 흄의 회의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선험적 종합판단'이라는 새로운 인식론적 범주를 도입하고, 이를 통해 과학적 지식의 보편성과 필연성을 설명하고자 했다.
흄의 사상은 계몽주의 전반에 걸쳐 합리적 비판정신의 모범으로 작용한다. 특히 그의 도덕·정치 철학은 공리주의와 자유주의 발전에 기여했으며, 종교에 대한 비판적 접근은 세속적 인본주의의 발전에 영향을 미친다. 흄의 회의주의적 태도는 합리적 철학 체계를 재정비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근대철학의 혁신적 전기를 마련한다.
5. 영국 경험주의의 한계와 의의
(1) 감각 경험에 대한 신뢰와 그 취약성
경험주의는 체계적으로 감각 경험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감각의 오류나 주관성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도전에 직면한다. 경험주의 내부에서도 이러한 문제가 순차적으로 드러나는데, 로크의 표상적 실재론에서 출발하여 버클리의 주관적 관념론을 거쳐, 흄의 회의주의에 이르는 과정이 이를 잘 보여준다.
특히 흄의 철저한 경험주의는 필연성, 인과성, 실체, 자아 등 우리가 당연시하는 많은 개념들이 경험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는 과학적 지식의 보편성과 객관성을 설명하기 어렵게 만들며, 궁극적으로는 경험주의 자체의 인식론적 한계를 드러낸다. 버클리처럼 극단적 관념론에 이르거나, 흄처럼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회의주의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이 경험주의의 근본적 한계로 지적된다.
(2) 근대 지식론의 발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 경험주의자들은 '모든 지식은 경험에서 시작한다'는 기조로 이성 중심의 합리론과 균형을 이루었고, 과학적 방법론에서 관찰과 실험의 중요성을 재평가하게 만든다. 로크의 백지설은 인간이 성장과 학습을 통해 발전할 수 있다는 교육적 낙관론의 기초가 되었으며, 흄의 인과성 비판은 귀납적 추론의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했다.
경험주의는 또한 인간 지식이 상대적이고 역사적일 수 있다는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근대의 진보적 지식관과 과학적 방법론의 발전에 기여한다. 절대적 진리보다는 경험적 검증과 점진적 개선을 통한 지식의 성장을 강조하는 이러한 관점은 현대 실용주의, 실증주의, 과학철학의 토대가 된다.
특히 '개념의 경험적 기원'에 대한 탐구는 현대 언어철학과 인지과학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으며, 의미와 인식의 관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했다. 이는 현대 실증주의, 실험과학, 경험연구의 기반이 된다.
(3) 후대 철학적·정치적 영향
영국 경험주의는 철학을 넘어 정치, 사회,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로크의 사회계약론과 자연권 사상은 계몽주의 정치사상과 미국·프랑스 혁명 등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특히 미국 독립선언서의 "생명, 자유, 행복 추구"의 권리는 로크의 자연권 개념에서 직접 영감을 받은 것이다. 또한 그의 권력 분립론과 관용론은 현대 민주주의 제도의 철학적 기초를 제공한다.
흄의 역사·도덕·종교 비판은 영미 실용주의, 논리실증주의 등으로 이어지는 지적 계보에 큰 자극을 준다. 특히 그의 도덕 감정론은 공리주의 윤리학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으며, 종교에 대한 자연주의적 접근은 세속 인본주의의 발전에 기여한다.
교육 분야에서도 경험주의는 중요한 영향을 미쳤는데, 로크의 교육론(교육에 관한 몇 가지 생각들)은 경험과 실천을 통한 학습, 개인의 능력과 관심에 맞춘 교육 등 현대 교육이론의 많은 원칙들을 선구적으로 제시한다.
더 넓게는, 영국 경험주의의 실용적이고 경험 중심적인 사고방식은 영미권의 철학적 전통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는 19세기 실용주의, 20세기 분석철학, 그리고 현대 과학철학과 인지과학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특히 흄의 문제의식은 칸트의 비판철학을 거쳐 현대 인식론의 핵심 주제가 되었으며, 그의 인간 본성에 대한 자연주의적 접근은 현대 심리학과 인지과학의 선구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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