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세 기본 2. 국제정치학 이론(1) – 현실주의와 자유주의

현실주의(Realism)의 기본 가정

현실주의는 국제정치를 이해하는 가장 오래되고 영향력 있는 이론적 패러다임이다. 현실주의의 핵심 가정은 다음과 같다:

• 무정부상태(Anarchy): 국제사회에는 중앙정부가 존재하지 않으며, 국가들은 자국의 생존과 안보를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 국가중심주의: 국가는 국제정치의 가장 중요한 행위자이며, 다른 행위자들(국제기구, 다국적 기업 등)의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 권력정치(Power Politics): 국제정치는 본질적으로 권력을 둘러싼 경쟁이며, 국가들은 자국의 권력을 극대화하려 한다.
• 국가이익(National Interest): 모든 국가는 자국의 이익, 특히 안보 이익을 최우선시한다.
• 회의주의(Skepticism): 국제협력의 가능성과 국제기구의 효과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고전적 현실주의

고전적 현실주의는 인간 본성의 부정적 측면에 주목한다. 대표적 학자들의 주요 이론은 다음과 같다:

• 투키디데스(Thucydides):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강자는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약자는 견뎌야 한다"는 권력정치의 속성을 묘사했다.
• 마키아벨리(Machiavelli): 『군주론』에서 국가 지도자에게 도덕보다 실용성을 중시할 것을 조언했다.
•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리바이어던』에서 무정부상태의 위험성과 생존을 위한 권력 추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한스 모겐소(Hans Morgenthau): 『국가 간의 정치』에서 권력에 대한 욕망이 인간 본성에 내재해 있으며, 국제정치는 이러한 권력 추구가 표출되는 장이라고 주장했다.

구조적 현실주의(신현실주의)

1970년대 케네스 왈츠(Kenneth Waltz)가 발전시킨 구조적 현실주의(또는 신현실주의)는 국제체제의 구조적 특성에 주목한다:

• 체제 수준의 분석: 개별 국가의 특성보다 국제체제의 구조적 특성이 국가 행동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 힘의 분포(Distribution of Power): 국제체제에서 힘의 분포 방식(단극, 양극, 다극 등)이 국제정치의 안정성과 국가 행동을 결정한다.
• 자조체제(Self-help System): 무정부상태에서 국가는 스스로의 생존을 책임져야 하며, 이는 안보 딜레마(Security Dilemma)를 초래한다.

신현실주의는 다시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 방어적 현실주의: 케네스 왈츠 등이 주장하며, 국가는 기본적으로 현상유지(status quo)를 선호하고 생존을 위한 적정 수준의 권력만 추구한다고 본다.
• 공격적 현실주의: 존 미어샤이머(John Mearsheimer) 등이 주장하며, 국가는 생존을 위해 권력을 최대화하려 하고, 패권을 추구한다고 본다.

현실주의의 핵심 개념

세력균형(Balance of Power)

세력균형은 어느 한 국가가 지나치게 강력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타국들이 연합하거나 자국의 힘을 키우는 메커니즘이다. 세력균형의 형태는 다음과 같다:

• 내적 균형(Internal Balancing): 군비 증강, 경제력 강화 등 자체 역량 강화
• 외적 균형(External Balancing): 동맹 형성을 통한 균형
• 균형(Balancing): 강대국에 대항하는 세력 형성
• 편승(Bandwagoning): 강대국에 동조하는 전략

안보 딜레마(Security Dilemma)

한 국가가 자국의 안보를 위해 취하는 조치(예: 군비 증강)가 타국의 안보 위협으로 인식되어 군비 경쟁이 발생하는 현상이다. 이는 국가 간 불신과 불확실성에서 비롯된다.

세력전이론(Power Transition Theory)

A.F.K. 오르간스키(Organski)가 제시한 이론으로, 국제체제에서 패권국과 도전국 간의 힘의 격차가 줄어들 때 전쟁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주장한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으로도 알려져 있다.

자유주의(Liberalism)의 기본 가정

자유주의는 현실주의와 대비되는 이론적 패러다임으로, 다음과 같은 기본 가정을 가진다:

• 진보와 협력: 인간의 이성과 협력을 통해 국제관계의 진보적 개선이 가능하다.
• 다양한 행위자: 국가뿐만 아니라 국제기구, 다국적 기업, NGO 등 다양한 행위자가 중요하다.
• 복합적 의제: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 환경, 인권 등 다양한 이슈가 국제관계에서 중요하다.
• 상호의존(Interdependence): 국가 간 경제적, 사회적 상호의존이 증가하면 협력 인센티브도 증가한다.
• 제도와 규범: 국제기구와 규범은 협력을 촉진하고 갈등을 완화하는 데 효과적이다.

고전적 자유주의

고전적 자유주의의 주요 사상가와 이론은 다음과 같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영구평화론』에서 공화정 체제, 국제연맹, 세계시민법을 통한 평화 구축 가능성을 제시했다.
•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집단안보, 민족자결, 국제연맹 등을 통한 새로운 국제질서 구상을 제시했다.
• 노먼 앤젤(Norman Angell): 『대환상(The Great Illusion)』에서 경제적 상호의존이 전쟁의 비용을 높여 전쟁 가능성을 줄인다고 주장했다.

신자유주의적 제도주의(Neoliberal Institutionalism)

1970년대 이후 발전한 신자유주의적 제도주의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 제도의 역할: 로버트 코헤인(Robert Keohane), 조셉 나이(Joseph Nye) 등은 국제레짐과 제도가 협력을 촉진한다고 주장했다.
• 절대적 이득(Absolute Gains): 국가들은 상대적 이득보다 절대적 이득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으며, 이는 협력 가능성을 높인다.
• 복합적 상호의존(Complex Interdependence): 국가 간 다층적 연결은 군사력 사용의 효용성을 감소시키고 협력 가능성을 높인다.
• 협력의 지속: 반복적 상호작용과 미래의 그림자(shadow of the future)는 협력의 지속성을 강화한다.

자유주의의 핵심 개념

민주평화론(Democratic Peace Theory)

민주주의 국가들은 서로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그 이유로는:

• 민주적 제도와 가치가 갈등 해결에 도움
• 책임성과 투명성이 전쟁 결정을 어렵게 함
• 민주주의 국가 간 경제적, 사회적 유대 관계 강화

국제레짐(International Regimes)

특정 이슈 영역에서 국가 간 협력을 촉진하는 원칙, 규범, 규칙, 의사결정 절차의 집합이다. 핵확산금지조약(NPT), 세계무역기구(WTO)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국제협력과 게임이론

자유주의는 게임이론을 활용해 국제협력의 가능성을 설명한다:

•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 단기적 이익 때문에 협력이 어려운 상황
• 반복게임(Iterated Games): 반복적 상호작용을 통해 협력 가능성 증가
• 이슈연계(Issue Linkage): 서로 다른 이슈를 연계함으로써 협력 촉진

현대 국제정치에서의 적용

현실주의적 해석 사례

• 강대국 정치: 미중 전략경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은 권력 경쟁의 측면에서 설명 가능하다.
• 핵억제(Nuclear Deterrence): 핵무기를 통한 세력균형과 억제 전략은 현실주의적 안보 논리를 반영한다.
• 동맹정치: NATO 확장,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협력 등은 세력균형의 논리로 설명된다.
• 지정학적 경쟁: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북극해 자원 경쟁 등은 국가이익 추구의 사례이다.

자유주의적 해석 사례

• 국제기구의 역할: UN, WTO, WHO 등 국제기구들의 글로벌 이슈 조정 기능
• 경제통합: EU, RCEP 등 경제통합을 통한 평화 구축
• 다자협력: 기후변화협약(파리협정), 핵확산금지조약 등 글로벌 문제 해결을 위한 협력
• 초국가적 연대: 인권, 환경 등의 이슈에서 국가 경계를 넘어선 시민사회 연대

이론의 한계와 비판

현실주의에 대한 비판

• 국가 이외 행위자의 역할 과소평가
• 협력과 제도의 중요성 간과
• 경제, 환경 등 비안보 이슈의 중요성 경시
• 국제규범과 가치의 역할 무시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

• 권력정치의 현실 과소평가
• 국제협력과 제도의 효과성 과대평가
• 국가 간 근본적 이해관계 충돌 가능성 간과
• 서구 중심적 가치관 편향

이론의 종합과 적용

현실주의와 자유주의는 상호보완적인 관점을 제공한다. 국제정치의 복잡한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이론의 통찰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 안보와 생존은 여전히 국가의 핵심 관심사이지만, 이를 달성하는 방식은 협력과 제도를 통해 다양화되고 있다.
• 권력경쟁은 지속되지만, 그 형태는 군사력에서 경제력, 기술력, 소프트파워 등으로 다변화되고 있다.
• 국제기구와 레짐은 특정 조건 하에서 효과적으로 기능하지만, 강대국의 이해관계와 충돌할 경우 제약을 받는다.
• 상호의존은 협력 인센티브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취약성과 민감성도 증가시킨다.

오늘날의 국제정세는 현실주의와 자유주의 어느 한쪽만으로는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따라서 다양한 이론적 렌즈를 통해 종합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