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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안보 10. 페미니스트 안보론: 젠더 렌즈로 다시 보는 안보의 세계

Archiver for Everything 2025. 5. 23.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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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안보론의 등장과 문제의식

1980년대 말부터 페미니스트 학자들은 국제관계학과 안보 연구가 근본적으로 남성 중심적이라는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시ynthia 엔로, J. 앤 티크너, 크리스틴 실베스터 등 선구적 페미니스트들은 국제정치가 표면적으로는 젠더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남성적 경험과 관점을 보편적인 것으로 가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페미니스트 안보론의 핵심 문제의식은 "여성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전통적 안보 연구에서 여성은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 안보의 주체는 남성(정치인, 군인, 외교관)이고, 안보의 객체도 남성적으로 구성된 국가나 체제였다. 여성은 보호받아야 할 약자나 전쟁의 부수적 피해자로만 인식되었을 뿐, 안보의 능동적 주체로는 여겨지지 않았다.

이런 배제는 단순한 부주의나 실수가 아니라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현상이었다. 안보 개념 자체가 남성적 경험과 가치에 기반해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힘과 지배, 경쟁과 갈등, 위협과 대응이라는 안보 담론의 핵심 요소들은 전통적으로 남성성과 연결된 가치들이었다. 반면 협력과 돌봄, 관계와 공감, 평화와 화해 같은 가치들은 "여성적"이라는 이유로 안보 담론에서 주변화되었다.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젠더 편향이 안보 연구의 질을 떨어뜨리고 현실을 왜곡한다고 주장했다.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의 경험과 관점을 배제한 채로는 완전하고 정확한 안보 분석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남성적 가치만을 중시하는 안보 정책은 종종 역효과를 낳으며 진정한 안전과 평화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젠더화된 안보 개념의 해체

페미니스트 안보론의 첫 번째 과제는 기존 안보 개념이 어떻게 젠더화되어 있는지를 폭로하는 것이었다. 가장 기본적인 차원에서 "안보"라는 개념 자체가 특정한 젠더 이데올로기를 내포하고 있었다. 전통적 안보 담론은 강한 남성 보호자가 약한 여성 피보호자를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준다는 가부장적 논리에 기반했다.

이런 보호 논리는 여러 층위에서 작동한다. 국가 차원에서는 "조국"이 남성적 수호자로, "조국의 딸들"이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구성된다. 군대는 "어머니와 누이들"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고 정당화된다. 가정 차원에서는 남성 가장이 아내와 딸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런 담론에서 여성은 항상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보호 논리가 허구적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는 여성을 "보호"한다는 남성들이 오히려 여성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는 경우가 많다. 가정폭력의 가해자는 대부분 남편이나 연인이고, 성폭력의 가해자도 대부분 아는 남성이다. 전쟁에서도 "적군"보다는 "아군"에 의한 성폭력이 더 흔하다. 보호 담론은 이런 현실을 은폐하고 남성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 역할을 한다.

또한 보호 논리는 여성을 영원한 미성년자로 만든다.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이 없다고 가정함으로써 여성의 주체성과 능동성을 부인한다. 여성이 정치적 결정에 참여하거나 군사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을 "부자연스럽고" "부적절한" 것으로 만든다. 결과적으로 여성은 안보 정책의 객체가 될 뿐 주체가 되지 못한다.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젠더화된 안보 개념을 해체하고 재구성할 것을 요구한다. 남성과 여성을 각각 보호자와 피보호자로 고정시키는 이분법적 사고를 거부하고, 모든 인간이 안보의 주체이자 객체가 될 수 있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또한 힘과 지배 중심의 남성적 안보관을 넘어서 관계와 돌봄을 중시하는 대안적 안보 개념을 모색한다.

전쟁과 젠더: 여성의 다층적 경험

페미니스트 안보론은 전쟁에서 여성의 경험을 새롭게 조명했다. 전통적으로 전쟁은 남성들 간의 경쟁과 갈등으로 이해되었고, 여성은 단순한 피해자나 방관자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페미니스트 연구는 여성이 전쟁에서 훨씬 복잡하고 다층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우선 여성들은 전쟁의 직접적 피해자가 된다. 전쟁에서 민간인 사상자의 대부분은 여성과 어린이다. 현대 전쟁의 특징인 "총력전"에서는 민간인과 전투원의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여성들도 직접적인 공격 대상이 된다. 특히 도시 폭격, 난민 이동, 기반시설 파괴 등은 여성에게 더 큰 피해를 준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젠더 특화된 폭력이다. 강간과 성폭력은 단순한 "전쟁의 부산물"이 아니라 의도적인 전쟁 무기로 사용된다. 적국 여성을 강간함으로써 적의 "순결"과 "명예"를 더럽히고, 공동체의 결속을 파괴하려 한다. 보스니아, 르완다, 시리아 등에서 벌어진 체계적 강간이 그 예다. 이는 여성의 몸이 남성과 공동체의 "소유물"로 여겨지는 가부장적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지만 여성은 단순한 피해자만이 아니다. 많은 여성들이 전쟁에서 능동적이고 다양한 역할을 담당한다. 직접 전투에 참여하는 여성 전사도 있고, 정보 수집이나 물자 조달에 관여하는 여성들도 많다. 또한 부상자 치료, 난민 보호, 평화 협상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게릴라전이나 민족해방투쟁에서는 여성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여성의 역할은 중요하다. 파괴된 공동체를 재건하고 가족을 돌보는 일은 주로 여성들이 담당한다.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화해를 이끌어내는 데도 여성들이 핵심적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런 기여는 대부분 인정받지 못하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이런 다양한 경험을 가시화하고, 여성을 전쟁의 단순한 피해자나 평화의 상징으로만 보는 관점을 비판한다. 대신 여성을 복잡하고 모순적인 존재로, 때로는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행위자인 존재로 이해할 것을 요구한다.

일상적 안보와 사적 영역의 정치학

페미니스트 안보론의 중요한 기여 중 하나는 "일상적 안보"의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전통적 안보 연구는 국가 간 전쟁이나 대규모 갈등 같은 "큰" 사건들에 집중했지만, 페미니스트들은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작은" 폭력들도 중요한 안보 문제라고 주장했다.

가정폭력이 대표적인 예다. 통계적으로 보면 여성에게 가장 위험한 곳은 전쟁터가 아니라 자신의 집이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 3명 중 1명이 일생에 한 번은 친밀한 파트너로부터 폭력을 당한다. 하지만 이런 폭력은 "사적인" 문제로 치부되어 안보 의제에서 배제되었다. "가정사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에 국가도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페미니스트들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슬로건을 통해 이런 공사 구분을 해체했다. 가정폭력이 개별적이고 우연적인 사건이 아니라 가부장적 권력 구조의 체계적 표현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한 국가가 가정폭력을 방치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 선택이며, 이는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성폭력도 마찬가지다. 전쟁에서의 성폭력은 "전쟁범죄"로 인정받지만, 평시의 성폭력은 "개인적 범죄"로 취급된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들은 둘 사이에 연속성이 있다고 본다. 평시의 성폭력 문화가 전시의 체계적 강간을 가능하게 하며, 둘 다 여성을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가부장적 권력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경제적 불안정도 중요한 안보 문제다. 여성들은 노동시장에서 차별을 받고, 무급 돌봄 노동을 전담하며, 빈곤에 더 취약하다. 경제적 의존은 다른 형태의 폭력에 노출될 위험을 높인다. 하지만 이런 구조적 불평등은 안보 정책에서 다루어지지 않는다.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일상적 위협들을 안보 의제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한다. 또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가르는 기존의 경계를 재검토하고, 개인적 경험에 내재된 정치적 차원을 드러낼 것을 주장한다. 이는 안보 개념을 크게 확장시키는 동시에 그 정치적 성격을 분명히 하는 효과가 있다.

마터널리즘과 평화의 문화

페미니스트 안보론 내에서 중요한 논쟁 중 하나는 여성이 본질적으로 평화적인가 하는 문제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이 생명을 낳고 기르는 경험을 통해 평화와 비폭력을 추구하는 성향을 갖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을 "마터널리즘(maternalism)" 또는 "차이 페미니즘"이라고 부른다.

마터널리스트들은 모성 경험이 독특한 도덕적 관점을 만들어낸다고 본다. 아이를 기르면서 돌봄, 보호, 양육의 가치를 체득하게 되고, 이는 경쟁과 지배보다는 협력과 화해를 중시하는 태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생명의 소중함을 직접 경험하기 때문에 폭력에 대해 더 민감하고 거부감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은 평화운동에서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어머니들의 평화운동", "전쟁에 반대하는 어머니들", "평화를 위한 여성들" 같은 단체들이 모성의 권위를 바탕으로 반전·평화 활동을 전개했다. 이들은 "생명을 낳은 여성이 죽음을 부르는 전쟁에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로 평화 운동에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했다.

하지만 이런 관점에는 비판도 많다. 우선 여성을 모성과 동일시하는 것은 본질주의적 편견이라는 지적이 있다. 모든 여성이 어머니가 되는 것은 아니며, 어머니가 되더라도 모두 같은 방식으로 반응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역사적으로 많은 여성들이 전쟁을 지지하고 폭력에 가담했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더 근본적으로는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할 위험이 있다. 여성을 평화롭고 온순한 존재로 규정하는 것은 결국 여성을 정치적 영역에서 배제하는 논리로 악용될 수 있다. "여성은 너무 감정적이고 비현실적이어서 안보 정책을 담당할 수 없다"는 식의 차별적 논리와 연결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최근의 페미니스트 안보론은 이런 본질주의를 경계하면서도 여성의 경험에서 나오는 독특한 통찰을 인정하려 한다. 중요한 것은 생물학적 차이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 젠더 역할과 경험이라는 것이다. 여성이 돌봄 노동을 주로 담당하게 되면서 관계적이고 맥락적인 사고를 발전시키게 되고, 이는 안보 문제에 대해서도 다른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는 식으로 이해한다.

1325호 결의와 여성·평화·안보 의제

페미니스트 안보론의 가장 큰 정책적 성과는 2000년 유엔 안보리 결의 1325호의 채택이었다. 이 결의안은 여성이 평화와 안보에 관한 의사결정에 평등하게 참여할 권리를 인정하고, 갈등 예방과 해결, 평화 구축에서 여성의 역할을 강화할 것을 요구했다. 이는 여성을 전쟁의 피해자로만 보던 기존 관점을 넘어서 평화 구축의 주체로 인정한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1325호 결의는 세 가지 핵심 원칙을 제시했다. 첫째는 참여(participation)다. 평화 협상, 평화 유지, 분쟁 후 재건 등 모든 단계에서 여성의 의미 있는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보호(protection)다. 무력 갈등에서 여성과 소녀들을 젠더 기반 폭력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예방(prevention)이다. 분쟁의 원인을 해결하고 여성에 대한 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 유엔은 여러 후속 결의안을 통해 "여성·평화·안보(Women, Peace and Security, WPS)" 의제를 발전시켜왔다. 1325호 결의의 이행을 촉구하는 1820호(2008), 1888호(2009), 1889호(2009), 1960호(2010), 2106호(2013), 2122호(2013), 2242호(2015) 등이 채택되었다. 이들 결의안은 성폭력 처벌, 여성 참여 확대, 젠더 관점의 주류화 등을 더욱 구체적으로 요구했다.

WPS 의제의 성과는 상당하다. 많은 국가들이 국가행동계획(National Action Plan)을 수립했고, 평화 협상에서 여성 참여가 늘어났다. 성폭력에 대한 국제적 관심도 높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한계가 많다. 여성의 참여는 여전히 제한적이고, 성폭력은 지속되고 있으며, 젠더 관점이 안보 정책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도구화"의 문제가 지적된다. 여성 참여를 늘리는 것이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더 효과적인 평화 구축을 위한 수단으로만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여성의 권리와 평등이라는 근본적 가치보다는 실용적 효과에만 관심을 갖는 것은 문제가 있다. 또한 서구적 가치를 강요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교차성과 다양한 여성들의 경험

초기 페미니스트 안보론은 주로 백인 중산층 여성의 경험에 기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1980년대 말부터 유색인 여성, 제3세계 여성, 성 소수자 등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페미니즘 내부의 다양성과 차이가 부각되었다. 이는 "교차성(intersectionality)" 개념의 도입으로 이어졌다.

교차성은 킴벌리 크렌쇼가 제시한 개념으로, 젠더가 다른 정체성 범주들(인종, 계급, 성적 지향, 종교 등)과 교차하면서 복잡한 차별과 억압의 경험을 만들어낸다는 이론이다. 예를 들어 흑인 여성의 경험은 단순히 흑인의 경험과 여성의 경험을 더한 것이 아니라, 흑인이면서 동시에 여성이기 때문에 생기는 독특한 경험이라는 것이다.

안보 영역에서도 교차성의 관점이 중요하다. 같은 여성이라도 인종, 계급, 종교, 국적 등에 따라 전혀 다른 안보 경험을 갖는다. 부유한 백인 여성과 가난한 유색인 여성이 직면하는 안보 위협은 질적으로 다르다. 또한 같은 사건이라도 다른 정체성을 가진 여성들에게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어 9.11 테러 이후 미국의 대테러 정책은 무슬림 여성들에게 특별한 영향을 미쳤다. 히잡을 쓴 여성들은 공항에서 별도의 보안 검색을 받아야 했고, 거리에서 혐오 범죄의 표적이 되었다. 이는 젠더와 종교가 교차하면서 나타나는 독특한 차별 경험이었다.

제3세계 여성들의 경험도 서구 여성들과는 다르다. 식민지배의 유산, 경제적 종속, 문화적 차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서구의 "여성 해방" 담론이 때로는 새로운 형태의 문화 제국주의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특히 "인도주의적 개입"의 명분으로 이루어지는 군사 개입이 실제로는 여성의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성 소수자들의 안보 경험도 주목받고 있다. LGBTI 개인들은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 때문에 독특한 안보 위협에 직면한다. 가족과 공동체로부터의 배제, 국가의 처벌, 사회적 차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특히 분쟁 상황에서는 더욱 취약해진다.

교차성 관점은 페미니스트 안보론을 더욱 포용적이고 복합적으로 만들었다. 단일한 "여성의 경험"이나 "여성의 관점"이 있다는 가정을 거부하고, 다양한 여성들의 서로 다른 경험을 인정한다. 이는 보다 정교하고 현실적인 안보 분석을 가능하게 한다.

퀴어 이론과 안보의 재구성

최근 페미니스트 안보론은 퀴어 이론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발전을 보이고 있다. 퀴어 이론은 이성애 중심주의와 이분법적 젠더 체계를 해체하려는 시도로, 안보 연구에도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전통적 안보 담론은 이성애 규범성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국가는 "조국"(fatherland)이나 "모국"(motherland)으로 가족화되고, 시민들은 이 가족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갖는다. 군대에서의 남성적 연대도 "형제애"로 표현되며, 적에 대한 적대감은 종종 동성애 혐오적 언어로 표현된다. 이런 담론에서 이성애 가족은 보호받아야 할 가치의 상징이 되고, 성 소수자들은 이 질서를 위협하는 존재로 여겨진다.

퀴어 이론가들은 이런 이성애 중심적 안보 담론이 어떻게 성 소수자들을 배제하고 억압하는지를 분석한다. 군대의 동성애자 금지 정책, 동성 결혼 금지,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 범죄 등이 "국가 안보"나 "사회 질서"의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메커니즘을 폭로한다.

하지만 퀴어 이론의 기여는 단순히 성 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을 넘어선다. 이성애 중심주의와 이분법적 젠더 체계 자체를 해체함으로써 안보 개념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하려 한다. 남성/여성, 이성애/동성애, 정상/비정상 같은 이분법적 구분을 거부하고, 유동적이고 다원적인 정체성 개념을 제시한다.

이는 안보의 주체와 객체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고정된 정체성을 가진 주체들 간의 갈등이 아니라, 유동적이고 복합적인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위협과 안전의 과정으로 안보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차이와 다양성을 위협이 아닌 안보의 자원으로 볼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한다.

돌봄과 재생산의 정치학

페미니스트 안보론의 중요한 기여 중 하나는 돌봄과 재생산 노동의 안보적 의미를 부각시킨 것이다. 전통적으로 이런 활동들은 "사적" 영역의 일로 여겨져 안보 연구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활동들이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안보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돌봄 노동은 인간의 생존과 발전에 불가결한 활동이다. 육아, 간병, 가사, 교육 등을 통해 인간의 기본적 필요를 충족시키고 사회적 유대를 유지한다. 하지만 이런 노동은 대부분 여성이 무급으로 담당하며,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 GDP에도 계산되지 않고, 정책 결정에서도 고려되지 않는다.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돌봄 노동의 "비가시성"이 안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돌봄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사회 전체가 불안정해진다. 저출산, 고령화, 가족 해체 등의 문제는 모두 돌봄 위기와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안보" 문제로 인식되지 않고 "복지" 문제로만 취급된다.

전쟁이나 분쟁 상황에서 돌봄의 중요성은 더욱 분명해진다. 전쟁으로 남성들이 죽거나 떠나면 여성들이 가족의 생계와 돌봄을 모두 책임져야 한다. 의료 체계가 붕괴되면 여성들이 부상자와 환자를 돌봐야 한다. 교육 시설이 파괴되면 여성들이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 이런 활동들이 없다면 사회의 재건은 불가능하다.

재생산의 정치학도 중요하다. 여성의 재생산 능력은 종종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된다. 민족주의적 갈등에서는 "우리 민족의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요구하고, 반대로 적대 집단의 재생산은 억제하려 한다. 강제 불임, 강제 임신, 낙태 금지 등이 "민족 안보"의 이름으로 자행된다.

페미니스트들은 돌봄과 재생산을 안보 의제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한다. 또한 이런 활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사회적으로 지원할 것을 주장한다. 이는 단순히 여성의 부담을 줄이는 것을 넘어서 사회 전체의 안보를 강화하는 일이라고 본다.

기후변화와 젠더화된 취약성

기후변화는 페미니스트 안보론이 주목하는 새로운 의제다. 기후변화의 영향은 젠더 중립적이지 않다. 같은 환경 재해라도 남성과 여성에게 다른 영향을 미치며, 기존의 젠더 불평등이 기후 취약성을 증폭시킨다.

자연재해 상황에서 여성들은 더 큰 위험에 노출된다. 2004년 인도양 쓰나미에서 사망자의 80%가 여성이었고, 2003년 유럽 폭염에서도 여성 사망률이 더 높았다. 이는 여성들이 수영을 못하거나, 집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길거나, 다른 사람을 돌보느라 대피가 늦어지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농업 생산성 저하도 여성에게 더 큰 타격을 준다. 개발도상국에서 농업 노동의 상당 부분을 여성이 담당하지만, 토지 소유권은 대부분 남성이 갖고 있다. 기후 적응을 위한 자원과 기술에 대한 접근도 제한적이다. 결과적으로 여성들이 기후변화의 최전선에서 피해를 당하게 된다.

물 부족 문제도 젠더 차원이 있다. 많은 지역에서 물 길어오기는 여성과 소녀들의 몫이다. 기후변화로 물이 더 부족해지면 더 먼 곳까지 가야 하고, 이는 교육 기회의 상실과 성폭력 위험 증가로 이어진다. 또한 생리 위생 관리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환경 난민 문제에서도 젠더 차원이 중요하다. 기후변화로 인해 이주하게 되는 사람들 중 여성의 비율이 높다. 하지만 여성 난민들은 이주 과정에서 성폭력, 인신매매, 강제 결혼 등의 위험에 노출된다. 또한 정착지에서도 차별과 배제를 경험한다.

페미니스트들은 기후변화 대응에서 젠더 관점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여성을 단순한 피해자로만 보지 말고 기후 적응과 완화의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지역에서 여성들이 지속가능한 농업, 에너지 절약, 생태계 보전 등에서 앞장서고 있다. 이런 경험과 지식을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고 본다.

사이버 안보와 디지털 젠더 폭력

디지털 시대의 도래와 함께 새로운 형태의 젠더 기반 폭력이 등장했다. 온라인 성희롱, 디지털 스토킹, 리벤지 포르노, 딥페이크 등이 여성에게 새로운 안보 위협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아직 제대로 된 안보 의제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온라인 성희롱은 가장 일반적인 형태다. 소셜미디어, 게임, 포럼 등에서 여성들은 성적 언급, 협박, 모욕을 당한다. 특히 공적 발언을 하는 여성들은 더 심한 공격을 받는다. 이는 여성들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공론장에서의 참여를 제약한다.

디지털 스토킹은 더 심각한 문제다. GPS 추적, 해킹, 소셜미디어 감시 등을 통해 여성의 일거수일투족을 추적한다. 가해자는 대부분 전 연인이나 가족 등 아는 사람이다. 이는 여성의 사생활과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리벤지 포르노는 친밀한 이미지를 동의 없이 유포하는 것이다. 주로 관계가 끝난 후 보복 목적으로 이루어진다. 피해자는 수치심과 두려움에 시달리며, 사회적·경제적 피해를 당한다. 자살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딥페이크 기술은 새로운 위험을 가져왔다. 인공지능을 이용해 가짜 포르노 영상을 만드는 것이다. 피해자의 90% 이상이 여성이며, 정치인, 기자, 활동가 등이 주요 표적이 된다. 이는 여성의 공적 활동을 위축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런 디지털 젠더 폭력의 특징은 확산성과 지속성이다. 한 번 온라인에 올라간 콘텐츠는 빠르게 퍼지고 완전히 삭제하기 어렵다. 또한 익명성 때문에 가해자를 찾기 어렵고, 국경을 넘나들기 때문에 법적 대응도 복잡하다.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문제들을 사이버 안보 의제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한다. 기존의 사이버 안보가 주로 국가 기반시설이나 기업 정보 보호에 집중했다면, 개인 차원의 디지털 안전도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온라인 폭력을 효과적으로 예방하고 대응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필요하다고 본다.

군사주의 비판과 대안적 안보

페미니스트 안보론의 핵심 중 하나는 군사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군사주의는 단순히 군대나 무기에 대한 선호를 넘어서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가치 체계다. 힘과 지배, 경쟁과 갈등을 미덕으로 여기고, 폭력을 문제 해결의 정당한 수단으로 본다.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군사주의적 문화가 젠더 불평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다.

우선 군사주의는 남성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전통적으로 "진짜 남자"는 용감하고 강하며 폭력을 두려워하지 않는 존재로 정의되었다. 군대는 이런 남성성을 훈련하고 강화하는 기관 역할을 했다. "국가를 지킨다"는 것은 남성의 특권이자 의무로 여겨졌다.

반대로 여성은 보호받아야 할 약자로 규정되었다. 여성의 "자연스러운" 역할은 전사가 아니라 간호사, 어머니, 연인이었다. 설사 전쟁에 참여하더라도 보조적이고 후방 지원 역할에 국한되었다. 여성의 참전은 "비상사태"의 예외적 조치로만 인정되었다.

이런 젠더 구분은 평시에도 지속된다. 남성은 공격적이고 경쟁적이어야 하고, 여성은 순종적이고 협력적이어야 한다는 성 역할 고정관념이 만들어진다. 가정폭력도 이런 맥락에서 정당화된다. 남성이 여성을 "훈육"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필요한 일로 여겨진다.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군사주의적 문화가 평화를 해치고 폭력을 확산시킨다고 비판한다. 갈등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 힘으로 제압하는 것이라는 사고는 협상과 타협의 가능성을 차단한다. 또한 "적"에 대한 적대감을 조장하여 갈등을 악화시킨다.

대안으로 페미니스트들은 "적극적 평화"의 개념을 제시한다.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구조적 폭력도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군사적 수단보다는 사회적 정의의 실현이 중요하다고 본다. 빈곤, 불평등, 차별 등 갈등의 근본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갈등 해결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승부를 가리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모두가 이길 수 있는 윈-윈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능력이 전통적으로 여성들이 개발해온 것이라고 보며, 이를 안보 정책에 반영할 것을 요구한다.

포스트콜로니얼 페미니즘과 글로벌 안보

페미니스트 안보론 내에서도 서구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초기 페미니스트 안보론은 주로 서구 백인 여성의 경험에 기반했으며, 제3세계 여성들의 목소리는 주변화되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포스트콜로니얼 페미니즘이 등장했다.

포스트콜로니얼 페미니스트들은 서구 여성과 비서구 여성이 처한 상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식민지배의 유산, 경제적 종속, 문화적 차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독특한 경험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따라서 서구적 페미니즘 이론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각 지역의 고유한 맥락을 고려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구출 서사(rescue narrative)"를 비판한다. 서구가 "억압받는" 제3세계 여성들을 "해방"시켜준다는 논리를 말한다. 이는 겉으로는 여성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구의 문화적 우월성을 전제하고 군사 개입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된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대표적인 예다. 미국은 탈레반의 여성 억압을 비판하며 전쟁을 정당화했다. "아프가니스탄 여성을 해방시키자"는 슬로건이 널리 사용되었다. 하지만 20년간의 전쟁 후에도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전쟁으로 인한 혼란과 불안정이 여성들에게 새로운 고통을 안겨주었다.

포스트콜로니얼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구출" 논리를 거부한다. 대신 제3세계 여성들을 능동적 주체로 인정하고, 그들이 스스로 정의하는 해방의 의미를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구적 기준으로 "후진적"이라고 여겨지는 관습이라도 해당 사회의 맥락에서는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글로벌 불평등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다. 제3세계 여성들이 직면하는 많은 문제들이 서구 중심의 글로벌 경제 질서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구조조정 프로그램, 자유무역 협정, 다국적 기업의 착취 등이 여성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이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진정한 여성 해방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미래의 과제와 전망

페미니스트 안보론은 지난 30여 년간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지만 여전히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이론적 차원에서는 다양한 페미니즘 이론들 간의 대화와 종합이 필요하다. 자유주의 페미니즘, 급진적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포스트모던 페미니즘 등이 각각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있어 통합적 이론 틀의 개발이 과제다.

방법론적으로도 혁신이 필요하다. 기존의 남성 중심적 연구 방법을 넘어서 여성의 경험과 지식을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접근법의 개발이 요구된다. 참여적 연구, 생애사 연구, 예술 기반 연구 등이 모색되고 있다.

정책적 차원에서는 WPS 의제의 실질적 이행이 과제다. 형식적 참여를 넘어서 여성의 실질적 권한 강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젠더 관점이 모든 안보 정책에 주류화되어야 한다.

제도적으로는 페미니스트 안보론의 영향력 확대가 필요하다. 아직도 많은 안보 기관과 연구소에서 젠더 관점은 부차적으로 취급된다.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여성 전문가의 양성과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비서구적 관점의 확산이 중요하다. 서구 중심적 페미니즘을 넘어서 다양한 문화와 맥락을 반영한 페미니스트 안보론의 발전이 필요하다. 특히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 비서구 지역의 여성들의 목소리와 경험을 반영한 이론의 발전이 요구된다.

결론

페미니스트 안보론은 기존 안보 연구의 남성 중심적 편향을 지적하고 젠더 관점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여성을 안보의 능동적 주체로 인정하고, 일상적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군사주의적 안보관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다. 이는 안보 연구의 지평을 크게 넓히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특히 젠더 렌즈를 통해 기존에 보이지 않던 많은 문제들을 가시화한 것이 가장 큰 기여다. 가정폭력, 성폭력, 인신매매 등이 중요한 안보 문제로 인정받게 되었고, 평화 구축에서 여성의 역할도 주목받게 되었다. 또한 안보 개념 자체가 정치적이고 젠더화된 구성물임을 보여줌으로써 보다 비판적이고 성찰적인 안보 연구를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페미니스트 안보론도 계속 발전해야 할 과제들을 안고 있다. 이론적 다양성을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 서구 중심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실천적 대안을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가 등이 중요한 과제들이다. 무엇보다 젠더 평등과 사회 정의라는 가치를 현실 정책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가 핵심적 도전이다.

21세기 들어 기후변화, 팬데믹, 디지털 혁명 등 새로운 도전들이 부상하면서 페미니스트 관점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런 복합적이고 상호연결된 문제들은 기존의 남성 중심적 안보 접근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협력과 돌봄, 지속가능성과 포용성을 중시하는 페미니스트적 가치들이 새로운 안보 패러다임의 핵심이 될 수 있다.

페미니스트 안보론의 궁극적 목표는 모든 성별의 사람들이 폭력과 억압으로부터 자유롭고 존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여성의 권익 보호를 넘어서 인류 전체의 안전과 평화를 위한 비전이다. 젠더 렌즈로 다시 본 안보의 세계는 더욱 복잡하지만 동시에 더욱 희망적이다. 진정한 안보는 누군가를 배제하고 억압함으로써가 아니라 모두를 포용하고 해방함으로써 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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