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정치 지형이 급격히 우측으로 기울고 있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 극우 정당이 역사적인 선거 승리를 거두면서, 전후 유럽의 정치 질서에 근본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반이민과 민족주의를 앞세운 이들 정당의 부상은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닌, 유럽 전역에 걸친 구조적 변화의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오스트리아 자유당: 극우의 역사적 승리
2024년 9월 29일, 오스트리아 정치사에 한 획을 그을 사건이 발생했다. 극우 성향의 자유당(FPÖ)이 28.9%의 득표율로 총선에서 1위를 차지하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극우 정당이 전국 선거에서 승리한 것이다.
이번 선거의 가장 충격적인 결과는 노동자 계층의 대규모 이탈이다. 한때 노동자의 60~70% 지지를 받았던 사회민주당(SPÖ)은 역대 최저 득표율인 21.1%를 기록했다. 반면 노동자 계층의 절반가량이 자유당을 지지했는데, 이는 유럽 좌파 정치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자유당 부상의 3가지 핵심 요인
1. 반이민 정서의 극대화
헤르베르트 키클 대표가 이끄는 자유당은 "오스트리아 제일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며 반이민 정책을 강화했다. 집권 100일 내 국경 폐쇄와 대규모 이민자 송환을 약속하는 등 극단적인 정책을 제시했다.
2. 경제적 불안감 활용
인플레이션과 생활비 상승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에게 사회민주당은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자유당은 이러한 경제적 불안을 이민 문제와 연결시켜 지지를 확보했다.
3. 전통적 가치관 강조
최근 오스트리아 사회에서 보수적 가치가 재부상하면서, 자유당은 강력한 국가 정체성과 민족적 자부심을 강조하는 전략으로 호응을 얻었다.
나치 연계 논란도 막지 못한 상승세
자유당은 1950년대 나치 친위대(SS) 출신 안톤 라인트할러가 창당한 정당으로, 끊임없는 나치즘 연계 의혹에 시달려왔다. 최근에도 당원들이 나치 찬양 노래를 부르는 영상이 공개되며 논란이 재점화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조차 자유당의 상승세를 막지 못했다.
독일 대안당: 제2당으로 도약한 극우의 힘
독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2025년 2월 23일 실시된 연방하원 총선에서 독일대안당(AfD)이 20.8%의 득표율로 제2당에 올랐다. 이는 2013년 창당 이후 최고 성적으로, 특히 구 동독 지역에서는 30% 이상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AfD 성장의 배경
AfD는 처음에는 유로존 탈퇴를 주장하는 경제적 보수주의 정당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2015년 시리아 난민 사태 이후 반이민으로 노선을 전환하면서 급격히 성장했다. 특히 젊은 남성층에서 강한 지지를 받으며, 극우 정당에 대한 사회적 금기가 약화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반헌법적 극우 단체" 지정
2025년 5월 2일, 독일 정부는 AfD를 "반헌법적 극우 단체"로 공식 지정했다. 연방헌법수호청은 AfD가 자유민주주의 기본 질서를 위협하며, 특히 무슬림 이민자에 대한 차별적 태도가 헌법과 양립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AfD는 도감청과 정보요원 투입 등 강화된 감시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AfD의 지지율은 계속 상승하고 있다. 앨리스 바이델 공동대표는 "다음 선거에서 기독민주연합(CDU)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는 극우 물결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2024년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정당들의 의석 비중은 18.2%로 증가했다.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 프랑스의 마린 르펜,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등 극우 지도자들이 각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극우 정당들의 공통된 특징
- 반이민·반이슬람 정책
- EU 회의주의와 민족주의 강화
-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 주장
- 전통적 가치관 강조
- 기존 정치 엘리트 비판
극우 부상이 가져올 변화
정치적 고립과 연정의 어려움
양국 모두에서 극우 정당이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단독 집권에는 실패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대통령이 자유당 대표의 총리 임명을 거부했고, 독일에서는 '극우 방화벽'이라 불리는 주류 정당들의 연정 거부로 AfD가 고립되어 있다.
전통 좌파의 몰락
가장 주목할 변화는 전통적 좌파 정당의 위기다. 노동자들이 극우 정당으로 대거 이동하면서, 100년 이상 유럽 정치를 이끌어온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존립의 위기에 처했다. 이는 단순한 정당 지지의 변화를 넘어, 유럽 정치 이념의 근본적 재편을 의미한다.
2026년, 유럽의 운명을 가를 선택
오스트리아와 독일 모두 2026년에 다시 총선을 치른다. 현재 여론조사에 따르면 양국의 극우 정당 모두 추가 상승 가능성이 높다. 특히 경제 상황이 악화되거나 새로운 난민 위기가 발생할 경우, 극우 정당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결론: 유럽 민주주의의 시험대
오스트리아 자유당과 독일 대안당의 부상은 전후 유럽이 구축해온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다. 이들의 성공은 단순한 선거 결과를 넘어, 세계화와 다문화주의에 대한 반발,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 기존 정치 체제에 대한 불신 등 복합적인 사회 문제를 반영한다.
유럽의 미래는 이제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극우의 부상이 일시적 현상으로 그칠지, 아니면 유럽 정치의 새로운 주류로 자리잡을지는 앞으로 몇 년간의 선택에 달려 있다. 분명한 것은 이 변화의 물결이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게 중요한 교훈과 경고를 던지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은 지금 역사의 전환점에 서 있다. 민주주의와 다원주의의 가치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향후 유럽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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