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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제재 해제, 현실주의 외교인가 윤리적 파국인가

Archiver for Everything 2025. 5. 16.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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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13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미-사우디-시리아 정상회담은 국제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던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리아에 대한 모든 미국 제재를 전면 해제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는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미국이 유지해 온 강경 제재 정책의 급격한 전환이자, 중동 안보 지형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결정이었다. 이번 조치가 미국의 전략적 국익을 위한 현실주의적 판단인지, 아니면 국제 인권 규범을 훼손하는 윤리적 후퇴인지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미국의 전략적 계산: 국익과 세력균형의 관점

우선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정은 미국의 실리적 국익을 극대화하려는 전형적인 현실주의 외교 전략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와 6,000억 달러 규모의 대규모 방산 및 에너지 투자 패키지를 성사시키는 동시에, 사우디-시리아-터키 3각 경제구상을 타결하며 자국의 경제적 실익을 챙겼다. 이는 무기 판매와 에너지 개발, 인프라 투자라는 거래를 통해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적 접근이다.

또한 이번 조치는 이란과 러시아의 영향력 아래 있던 시리아를 미-사우디-터키 축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특히 이란을 견제하고, 이스라엘-아랍 국가 간 관계 정상화를 추가로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역 세력균형을 재편하려는 구상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국제정치 현실주의 이론가 존 미어샤이머가 강조한 균형추 외교 전략과도 일치한다.

미국 국내 정치적으로도 이번 결정은 의미가 크다. 중동 대규모 투자 유치와 일자리 창출, 주가 상승 효과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레이스에서 경제 실적을 과시할 수 있는 카드가 되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경제 성장과 안보'라는 이중 목표 달성을 노리고 있다.

윤리적 딜레마: 인권과 국제 규범의 훼손

하지만 이번 결정은 국제 인권 규범과 국제법의 심각한 훼손이라는 비판도 동시에 받고 있다. 시리아 내전 기간 동안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과 각종 무장 세력은 화학무기 사용, 민간인 학살, 고문 등 수많은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는 국제사회의 보고가 누적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이러한 과거사에 대한 책임 추궁 없이 제재를 해제하는 것은 인권 침해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2019년 발효된 'Caesar Syria Civilian Protection Act'(카이사르법)은 시리아 인권 탄압을 겨냥한 대표적인 미국의 인권 제재 법안이었다. 이번 조치가 이 법과 어떻게 조율될지 불확실하며, 인권 압박 수단이 무력화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국제 인권과 규범 기반 질서의 수호자를 자처해 왔다는 점에서 이번 결정은 미국의 도덕적 리더십을 스스로 훼손하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

국제질서와 지역안보에 미칠 파장

이번 결정이 가져올 파급효과는 중동 지역을 넘어 국제질서 전반에 걸쳐 크고 복합적이다.

첫째, 시리아 경제는 대규모 외국인 투자 유치와 인프라 재건이 가능해지면서 난민 귀향과 경제 회복의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다마스쿠스 증시는 제재 해제 발표 직후 폭등하며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를 반영했다. 그러나 부패한 엘리트 집단이 재건 이익을 독점하거나 투자자 안전이 보장되지 않을 경우 실질적 재건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둘째, 지역 세력균형은 이란과 러시아의 반발 속에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사우디-시리아-터키 축의 강화는 이란-러시아 축과의 대립 구도를 심화시킬 수 있으며, 이스라엘과 시리아 간 국교 정상화 추진이 새로운 군사적 긴장을 유발할 수도 있다.

셋째, 국제 인권 거버넌스와 규범 기반 질서가 약화될 우려가 있다. 미국이 실용적 안보 연대를 명분으로 인권 규범을 선택적으로 적용하는 전례를 만들면서, 향후 다른 국가들도 인권을 무시한 국익 중심 외교를 정당화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이는 국제 규범 피로감과 불신을 심화시킬 수 있다.

결론: 실용과 규범의 갈림길에 선 국제사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제재 해제는 미국의 국익을 우선시한 전략적 승부수이자, 동시에 국제 인권 규범의 약화를 초래할 수 있는 윤리적 후퇴로 평가된다. 이번 결정이 중동 지역 안정과 경제 재건의 기폭제가 될지, 규범 붕괴와 국제질서 불안정의 시작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국제사회는 시리아 과도정부의 실질적 인권 개선과 민주적 전환을 견인하기 위한 압박과 지원을 병행해야 하며, 전쟁범죄 책임자에 대한 국제적 법적 책임 추궁을 지속해야 한다. 그래야만 미국의 이번 결정이 단순한 국익 거래를 넘어, 중동 평화와 인권 보호라는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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