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tal Health

대퇴사 시대, 번아웃이 남긴 정신건강의 상처

Archiver for Everything 2025. 5. 4. 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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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00만 명이 일자리를 떠난 이유

2021년 미국에서 시작된 '대퇴사(The Great Resignation)' 현상은 전 세계 노동시장을 뒤흔들었다. 2021년 11월 한 달 동안만 무려 4,700만 명의 미국 직장인들이 사표를 던졌다. 이는 지난 20년간 최고치였다. 하지만 이 현상은 단순한 이직 트렌드가 아니었다. 그 이면에는 팬데믹이 촉발한 심각한 정신건강 위기가 도사리고 있었다.

케임브리지대학교 연구진이 Reddit의 구직 관련 게시판을 분석한 결과, 팬데믹 이후 퇴사 관련 게시물에서 '정신건강', '번아웃', '업무 스트레스'라는 단어가 급격히 증가했다. 특히 정신건강 관련 주제는 퇴사 관련 게시물에서 비퇴사 게시물보다 10%포인트나 더 많이 언급됐다. 이는 대퇴사가 단순한 경제적 선택이 아닌, 정신건강을 지키기 위한 절박한 탈출이었음을 보여준다.

재택근무의 역설: 자유가 가져온 고립

팬데믹이 가져온 재택근무는 양날의 검이었다. 26세의 토목 엔지니어 소피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출퇴근 스트레스에서 해방되고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지만, 그녀는 곧 "우울증, 불안, 외로움, 그리고 정신적·신체적 건강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리게 됐다.

많은 기업 리더들은 대퇴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그룹이 바로 원격 근무자들이라고 지적한다. 업무와 사생활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사회적 고립이 심화되면서 '디지털 번아웃'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정신건강 문제가 등장했다. 재택근무가 반드시 직무 만족도를 높이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번아웃: 퇴사의 진짜 이유

2021년 새 직장을 시작한 미국 직장인의 40%가 이전 직장을 떠난 주요 이유로 '번아웃'을 꼽았다. 이는 단순한 업무 과중을 넘어서는 문제였다. Forbes는 이를 두고 "깨진 직장 문화"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한 연구에 따르면, 직장에서 정신건강 지원을 받은 직원들은 그렇지 않은 직원들보다 직무 만족도가 2.7배 높았고, 회사에 2년 이상 머물 가능성도 2.5배 높았다. 이는 정신건강 지원이 단순한 복지가 아닌, 직원 유지를 위한 핵심 전략임을 보여준다.

특히 의료 분야에서 번아웃 문제는 심각했다. 2022년 정신건강 및 사회복지 기관에서의 높은 퇴사율은 팬데믹 기간 동안의 극심한 번아웃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다.

대규모 퇴사에서 대규모 후회로

놀랍게도, 대퇴사에 동참했던 많은 이들이 나중에 그 결정을 후회했다. Paychex의 연구에 따르면, 팬데믹 기간 중 직장을 떠난 전문가 10명 중 8명이 퇴사를 후회했다. 특히 Z세대에서 이 비율은 89%에 달했다.

퇴사자들은 정신건강, 일과 삶의 균형, 직장 관계, 재취업 기회 모두가 퇴사 결정으로 인해 오히려 악화됐다고 보고했다. 산업을 바꾼 전문가들은 같은 산업에 남아있는 근로자들보다 25% 더 높은 확률로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이들은 이전 직장의 동료들, 사무실 환경, 심지어 일과 삶의 균형까지 그리워했다.

직장 상실이 남긴 깊은 상처

직장 상실은 단순한 수입원의 상실을 넘어선다. 연구에 따르면 직업은 "하루의 구조, 아침에 일어날 이유, 추구할 목표, 의미, 정체성 및 지위"를 제공한다. 일자리 상실은 우울증, 불안, 심인성 증상의 증가, 사회적 철수, 가족 붕괴, 약물 사용 위험 증가와 관련이 있다.

한 연구는 직장 상실 후의 반응을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혼합형', '슬픔형', '우울형', '회복력형'. 이는 개인마다 직장 상실에 대한 반응이 다르며, 일부는 특히 정신건강 문제에 취약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팬데믹 초기에 일자리나 소득을 잃은 근로자들은 2년 후에도 정신적 고통 수준이 9-11% 증가한 상태였다. 반면, 재택근무로 전환한 참가자들은 정신건강 측정에서 변화가 없었다. 이는 직장 상실 자체가 정신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신건강 지원: 선택이 아닌 필수

Modern Health의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3분의 1이 정신건강을 위해 회사를 변경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는 정신건강 지원이 인재 유치와 유지의 핵심 요소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Mercer의 보고서는 팬데믹 첫 해에 전 세계적으로 불안과 우울증 유병률이 25%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는 5,300만 명 이상의 새로운 주요 우울증 사례와 연결된다. 특히 저임금 근로자와 한부모 가정에서 이 문제가 더욱 심각했다.

기업들은 이제 정신건강 지원을 단순한 복지가 아닌 생존 전략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유연한 근무 방식, 일과 삶의 균형 촉진, 관리 가능한 업무량 유지 등이 필수적이다.

새로운 직장 문화의 탄생

대퇴사는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이는 근본적인 직장 문화 변화의 신호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를 'The Great Resignation'이 아닌 'The Great Reprioritization(우선순위의 대재정립)'으로 부른다.

팬데믹은 기존 직장 문화에 대한 재평가를 촉발했다. 많은 근로자들이 자신의 정신건강과 웰빙을 우선시하기 시작했다. 91%의 직원들이 잠재적 고용주의 정신건강 지원 문화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조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결론적으로, 대퇴사 현상은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정신건강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조직과 사회 전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다. 미래의 직장은 단순히 일하는 공간이 아닌, 구성원의 정신건강과 웰빙을 지원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를 수용하고 적응하는 기업만이 인재 전쟁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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