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백악관에 복귀하면서 세계는 다시 한 번 지정학적 균열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유럽 주요국 가운데 프랑스는 누구보다 빠르고 단호하게 대응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은 이제 스스로를 지켜야 할 시간"이라고 선언하며 외교, 안보, 경제 전반에 걸친 전략적 전환을 본격화했다.
트럼프 2기 시대의 불확실성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은 유럽 전역에서 우려와 경계의 목소리를 불러일으켰다. 그가 지난 임기에서 NATO를 "쓸모없는 비용"이라 폄하하고, 푸틴 대통령과의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온 만큼, 미국의 동맹국들은 미국이 더 이상 '안정적인 파트너'가 아닐 수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전 프랑스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는 이를 두고 "트럼프의 미국은 더 이상 우리의 동맹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유럽의 정치 지도자들은 이제 미국의 안보 우산에 의존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재고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 발표한 NATO 분담금 재조정 요구는 이러한 우려를 더욱 가중시켰다. 그는 유럽 국가들이 GDP의 최소 3% 이상을 국방비로 지출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미국의 NATO 탈퇴 가능성도 시사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수립된 범대서양 안보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발언이다.
핵 억제력 확대 선언 – "프랑스의 핵은 유럽의 핵이다"
가장 주목받은 움직임은 프랑스 핵 억제력의 유럽화 제안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3월 초 TV 연설을 통해, 프랑스의 핵무장이 단순히 국가 방위를 넘어서 유럽 연합 전체를 위한 억제력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의 방위 공백을 프랑스가 메우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그는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러시아의 공격성은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 유럽은 미국 없이도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 프랑스의 핵 억제력은 유럽 전체의 안보를 위한 기반이 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이 발언은 유럽 내에서도 다양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조심스러운 지지를 표명한 반면, 폴란드와 발트 3국은 여전히 미국의 NATO 안보 공약에 의존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마크롱의 제안이 실질적인 핵 억제력 공유보다는 유럽 방위 산업의 통합과 공동 전략 수립을 위한 정치적 메시지에 가깝다고 분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유럽의 방위 자립 논의를 한 단계 끌어올린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유럽 방위, 이제 진짜 '유럽의 일'
마크롱은 트럼프 대통령의 유럽 경시 발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응수했다.
"우리는 여전히 미국의 충실한 동맹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스스로를 지킬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유럽의 안보는 더 이상 미국의 우선순위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때다."
그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병력 파병 가능성도 열어두며, 유럽 내 실질적인 전투 능력 확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더 이상 우크라이나를 돕지 않는다면, 프랑스가 앞장서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는 지난 달 우크라이나에 추가적인 군사 지원 패키지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라팔 전투기 30대와 최신 대공 미사일 시스템, 그리고 군사 고문단 파견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이 모든 지원이 유럽 방위 기금(European Defence Fund)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프랑스 국방부 장관 세바스티앙 르코르뉘는 "우리는 이제 유럽의 안보를 유럽인의 손으로 책임져야 한다"며 "이는 단순한 슬로건이 아닌 구체적인 행동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프랑스는 유럽 국방 예산의 대폭 증액과 함께, 통합된 유럽 방위 사령부 설립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경제 전략 – 유럽 단결과 공동 국방 투자
군사력만이 아니다. 프랑스는 유럽 단위의 경제적 연합과 공동 부채 발행, 방위 산업 투자 확대를 강력히 지지하고 있다. 최근 유럽연합은 방위 산업에 1,500억 유로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고, 이는 마크롱이 강조해 온 "전략적 유럽"의 핵심 축으로 작용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유럽의 경제적 주권은 안보 주권과 분리될 수 없다"고 역설하며, 방위 산업 육성을 위한 공동 채권 발행을 제안했다. 이는 코로나19 위기 당시 성공적으로 시행된 '차세대 EU' 회복 기금의 경험을 국방 분야로 확장하는 접근법이다.
프랑스의 주도 아래 유럽 방위 산업 협력체(EDIC)가 출범했으며, 이를 통해 유럽은 핵심 방위 기술의 자체 개발과 생산 능력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 우주 방위, 사이버 보안 분야에서 미국과의 기술 의존도를 낮추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유럽 내부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에 대한 지지가 확산되고 있다. 우르술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유럽의 방위 산업 강화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프랑스의 제안에 동조했다. 유럽중앙은행 역시 방위 산업 투자에 대한 특별 금융 지원 방안을 검토 중이다.
결론: 프랑스는 지금 '유럽의 방패'를 자처한다
트럼프 2기의 등장은 단순한 미국 국내 정치의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유럽 안보 지형의 판을 바꾸는 결정적 계기다. 이에 프랑스는 핵 억제력 공유, 유럽 방위 리더십, 독자 경제전략이라는 3대 축을 바탕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이 제안한 프랑스 핵의 유럽화는 단순한 상징을 넘어, 유럽의 자주성과 전략적 자율성을 실현하려는 구체적인 메시지다. 지금 유럽은, 그리고 프랑스는 이전과는 다른 시대의 리더십을 요구받고 있다.
프랑스의 이 같은 움직임은 NATO의 약화가 아닌, 보완을 목표로 한다. 마크롱은 "강한 유럽이 강한 대서양 동맹의 기초"라고 강조하며, 유럽의 방위 역량 강화가 궁극적으로는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전이 현실화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유럽 내 합의 도출, 막대한 재정 부담, 그리고 역내 방위 산업의 통합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안보 우산을 대체할 만한 역량을 단기간에 갖추기는 어렵다는 현실적 한계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은 유럽, 특히 프랑스에게 안보 자립의 필요성을 절실히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마크롱의 '유럽 방위 독립' 구상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하지만, 적어도 지금 프랑스는 흔들리는 유럽의 안보 질서 속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려는 과감한 시도를 하고 있다.
유럽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불확실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프랑스가 이 불확실성의 시대에 유럽의 방패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2기의 미국이 대서양 너머로 거리를 두는 동안, 프랑스는 유럽의 자립을 위한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이 성공할지 여부는 마크롱의 리더십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의 단결과 결단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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